[펌] 조선일보가 일본 부동산 버블 붕괴에서 배워야 할 것


선대인 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 미디어오늘에 기고문
2010년 08월 04일 (수) 11:23:22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장기불황은 일본 정부가 80년대 저금리 정책을 통해 부동산과 주가 폭등이라는 버블을 자초한 데 일차적인 원인이 있다. 하지만 더 큰 잘못은 너무 늦게, 너무 조급하게 버블을 깨뜨려 경제를 치유 불능의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7월 22일자 조선일보 차학봉 산업부 기자(차장대우)가 ‘日 버블 붕괴서 배울 것”이라는 제목으로 쓴 ‘조선데스크’ 칼럼의 일부 내용이다. 그는 이 같은 진단을 바탕으로 “집값 폭락을 방치한다면 서민을 위하는 대책이 될 수 없다”며 연착륙 방안을 주문했다. 표현은 연착륙이었지만, 사실상 부양책을 주문한 것으로 보인다. 칼럼이 게재된 날이 정부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DTI 규제 완화 여부 등을 포함한 부동산 추가 부양책을 발표하기로 예정됐던 점을 고려하면 그렇다. 그 며칠 앞서 조선일보가 ‘차라리 강만수가 그립다’는 강효상 부국장의 칼럼으로 DTI 규제 완화 등 무차별적인 부동산 부양책을 주문한 것과 궤를 같이 하는 칼럼이란 점도 이를 방증한다.  

지난해 10월 차학봉 기자는 필자의 이름만 거론하지 않았을 뿐 누구나 짐작할 수 있게 필자에게 ‘폭락론자’ ‘사이비 종말론자’라는 딱지를 붙이며 “한국에서는 부동산 폭락 가능성이 없다”고 단언했다. 그것도 필자의 주장을 ‘조만간 반토막’ 식으로 거두절미하고 왜곡하면서 말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발간된 ‘일본을 통해 본 부동산 10년 대폭락 시나리오’라는 책의 해제에서 당시 정부 정책을 질타하며 부동산 버블 가능성을 경고했던 사람의 글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였다. 정권에 따라 자신의 입장이 바뀌는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하면 부동산 버블에 대한 사전경고라는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폭락 선동이라는 불륜이라는 말인가?

참고로, 같은 날 조선일보는 ‘모난 독후감’이라는 서평난에서 표정훈이라는 경제 문외한인 출판평론가(?)를 동원해 필자의 책 <위험한 경제학>을 평하면서 필자를 부동산 폭락이라는 비가 올 때까지 ‘인디언 기우제’를 지내는 사람으로 묘사했다. 한날 한시에 게재된 두 글에서 <위험한 경제학>에 대한 구체적이고 근거 있는 반박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7월 22일자 칼럼에서 차학봉 기자는 분명히 입장을 바꿨다. “서울 등 상당수 지역의 집값은 정점 대비 20~30% 떨어진 데다 사실상 거래도 중단된 상태”라고 주장하고, 정부 당국자에게 ‘부동산 폭락을 방치하지 말라’고 주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문 정도에 그치지 않고, 글의 맥락을 보면 일본식 버블 붕괴 가능성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는 듯하다. 지난해 10월까지만 해도 ‘부동산 폭락 가능성이 없다’고 했었던 것과는 정반대의 판단이 아닐 수 없다.

부동산 버블이라는 것이 꺼지기 직전에야 활화산처럼 솟아나는 게 아니라면 이런 입장 변화는 셋 중 하나다. 폭락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조선일보의 주독자층인 부동산 부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지난해 10월의 칼럼을 썼거나, 아니면 정부의 부동산 추가 부양책을 압박하기 위해 최근 상황을 자신의 실제 인식보다 과장, 왜곡한 것이거나 그도 저도 아니라면 자신의 무지 때문에 오판한 경우다. 사실 필자의 눈에는 이 세가지가 일정한 비율로 혼합된 것으로 보이지만, 어느 경우든 분명한 게 있다. 차 기자가 자신의 판단이 180도 달라진 것에 대해 필자와 그 글을 읽었던 독자들에게 사과하는 게 도리라는 사실이다.

 
 
 
  ▲ 조선일보 7월22일 34면.  

 

각설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지금 국내에는 조선일보 주장처럼 일본이 장기 침체로 치닫게 된 상황을 왜곡하면서 “경착륙하게 되면 일본식 장기불황을 맞을 수 있다”며 부양책을 주문하는 요구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른바 연착륙론이다. 얼핏 들으면 그럴듯한 주장처럼 들린다. 진정으로 연착륙을 바라는 주장이라면 필자도 동의를 유보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들의 연착륙론은 건설 및 부동산 기득권의 시각에 강하게 오염돼 있다. 연착륙론은 주로 건설업계나 부동산업계, 재벌계 연구소나 조선일보 등 부동산 기득권 신문들에서 주로 내놓는 표현이다. 그런데 이들의 연착륙론 주장을 가만히 뜯어보면 사실 ‘부동산 경기 부양론’에 가깝다.

원래 의미의 연착륙을 생각해보면 차이를 잘 알 수 있다. 잔뜩 부풀어오른 풍선에 비유하자면, 바늘로 쿡 찔러서 풍선을 터뜨리는 것이 경착륙이라면 풍선의 바람 구멍을 열어 서서히 바람을 빼나가는 것이 연착륙이다. 따라서 연착륙론은 부동산 가격의 하향 조정을 점진적으로 유도해나가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제기된 연착륙론의 결과는 현실적으로 거품이 좀 빠질만하면 거품을 다시 불어넣는 과정의 반복이었다. 2008년말 이후 주택 가격이 급락하면서 이명박 정부가 쓴 대대적인 부동산 부양책과 투기 조장책의 근거도 연착륙론이었다. 그 결과 지난 한 해에만 45조원에 가까운 가계부채가 늘어나 부동산 거품 붕괴의 충격을 더했고, 이미 상당수가 집 가진 빈자인 ‘하우스푸어’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2004년 주택 시장 침체기 때도 마찬가지였다. 2003년까지 지속됐던 2000년대 1차 부동산 폭등기가 일단락되자 부동산 기득권 세력들이 “경착륙은 안 된다”며 연착륙론으로 위장한 부양책을 주문했다. 그 결과 당시 이헌재 재경-강동석 건교 라인을 투톱으로 투기 과열지구 해제 등 건설 및 부동산 경기 부양책이 대대적으로 실시됐다. 또한 판교신도시를 ‘로또 투기판’으로 만드는 등 건설업계를 먹여살리기 위한 신도시 개발이 이뤄짐으로써 수도권 중심의 2차 부동산 폭등을 불러왔다.  

결국 지금까지 연착륙론은 부동산 거품 빼기를 계속 미루면서 부동산 거품을 떠받치기 위해 천문학적인 국가 재원을 탕진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그러면서 부동산 거품은 계속 커져 건설업체와 저축은행금융권의 부실 규모도 커지고, 가계 부채는 늘어왔다. 말이 연착륙론이지 실제 현실에서는 부동산 거품을 더욱 키워 한국경제의 경착륙을 유도한 것이다. 이는 우리가 2004년으로 돌아가는 상상을 해보면 너무나 명확히 드러난다. 그 당시 연착륙론으로 포장된 건설경기 부양론에 휘둘리지 않고, 부동산 거품을 제대로 뺐더라면 지금 같은 위기감에 시달렸을 것인가.

조선일보가 주장하는 연착륙론 또한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정확히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칼럼 주장대로라면 일본이 “89년에서 90년에 걸쳐 금리를 2.5%에서 6%로 수직상승”시킨 것이 버블 붕괴를 촉발했다는 것인데, 한국은 사실 지금 정반대 상황이다. 2008년말 주택 가격 급락 현상이 일어나자 5.25%이던 기준금리를 2%라는 사상 최저금리로 낮췄고, 주택대출 만기 상환 연장과 DTI 및 재건축 규제 완화, 부동산 세금 감면 및 수도권 분양권 전매제한 완화, 미분양 물량 매입, 4대강 사업을 비롯한 각종 토건 부양책을 실시했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기준금리를 0.25% 포인트 올리고 지난해 9월 DTI규제를 다시 묶었지만 여전히 매우 강력한 부동산 부양책 기조가 유지되고 있다.

최근 이뤄진 기준 금리 인상이나 지난해 DTI규제 재도입 또한 물가상승 압력이 매우 빠르게 가중되고 가계부채가 이미 한계에 이른 시점에서 마지못해 취한 고육책에 가깝다. 물론 모든 경제 정책을 ‘부동산 올인’ 정책에 복속시켜 갈 데까지 가보길 원하는 부동산 기득권 세력에게는 성에 안 찰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조선일보가 우려하는 너무 조급한 대책이라기보다는 국민경제와 일반가계를 볼모로 부동산 거품을 떠받치려는 속내가 보이는 느려터진 정책이라고 해야 한다. 더구나 조선일보 스스로 몇 달 전부터 송희영칼럼 등을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을 요구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심각한 자기모순이다. 여전히 한국 정부는 부동산 폭락을 방치하기보다는 부동산 버블을 방치하는 기조에 가깝다. 

더구나 문제는 모두가 꿈꾸는 ‘아름다운 연착륙’이 가능한가 하는 문제다. 계속 연착륙을 부르짖으며 결과적으로 부동산 거품을 너무 키워온 결과 한국경제가 이미 상당한 충격을 겪지 않고는 부동산 거품을 빼기 어려운 상황에 와 있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가계부채 730조원과 주택 대출 340조원 위에 쌓아 올린 악성 거품을 만들어놓고 아무런 충격 없이 연착륙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부터가 지나친 과욕이다. 자본주의 역사가 증명하듯이 막대한 부채에 기반한 버블이 아무런 충격 없이 꺼졌던 사례는 없었다. 또한 부동산 거품을 정부가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정부가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 부동산 버블이라면 과거 일본이나 현재의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정책 당국자들은 바보라서 버블이 붕괴한 것인가.

미국의 경우 2007년 하반기 서브프라임론 사태가 본격화된 이후 미국정부의 천문학적인 경기부양책과 공적자금 투입, 그리고 FRB의 금리인하 등 온갖 대책에도 불구하고 미국경제는 심각한 경기침체를 겪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론 사태가 본격화되자 많은 사람들이 미국은 일본의 경우와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폴슨 재무장관이나 버낸키 의장 등 미국 정책당국자들은 가장 먼저 일본의 버블 붕괴사례를 주시했다. 똑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결과는 90년대 일본의 부동산버블 붕괴 과정에서 나타난 것과 거의 유사한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하버드대 케네스 르고프 경제학 교수는 “미국경제가 더블딥을 겪지 않더라도 미국 주택시장이 10년 정도의 장기 침체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문제는 일본의 갑작스러운 부동산 버블 대응책이 부동산 버블 붕괴 충격을 키웠다는 잘못된 인식이다. 일본의 부동산 정책 대응의 문제점을 지적할 때 ‘너무 늦게, 너무 강한(too late, too strong)’ 이라는 표현을 종종 사용한다. 일본이 플라자합의 이후 지속된 엔고로 인한 불경기에 대응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저금리 정책을 너무 오래 지속하고 대출규제를 도외시한 결과 버블이 커져 뒤늦게 급브레이크를 밟을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일본이 부동산 버블을 제때에 제어하지 못한 채 버블을 너무 키워 어쩔 수 없이 급제동을 걸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다는 게 더 정확한 인식이다. 버블 자체를 갑작스럽게 꺼트린 측면보다는 부동산 거품을 너무 키워 부동산 거품을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간 것이 근본 문제였다.

그런데 이미 국내의 부동산 버블도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규모가 세계 최고 수준일 정도로 이미 심각한 상황이다. 그런데도 국내의 부동산 경기부양론자들은 이런 상황은 도외시한 채 ‘너무 강한’ 정책은 안 된다며 이미 너무 늦어버린 부동산 거품 해소를 계속 미루라고 주문하고 있는 격이다. 언제까지 더 미루며 부동산 거품을 키워야 한다는 말인가.

하지만 일본 부동산 시장이 장기 침체의 늪에 빠진 데는 더 중요한 이유가 따로 있다. 버블 붕괴 이후 일본 정부가 건설족이나 금융족 등 기득권 세력들의 저항으로 각종 토건 부양책 등을 구사하는 한편 제대로 된 부실 채권 정리와 구조개혁을 지연시켰던 탓이 훨씬 더 크다.

왜 그런지를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아래 <도표1>에 나타난 바와 같이 일본 정부는 부동산 버블 붕괴를 막기 위해 1992~1995년 동안 무려 66.9조 엔에 달하는 각종 경기부양대책을 쏟아냈다. 경기부양대책 외에 2조 엔씩 세 차례 보완대책이 나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총 재정투입은 73조 엔에 이른다. 이는 1994년 일본 정부의 일반예산 규모와 맞먹는 액수였다. 이처럼 막대한 재정을 경기부양대책에 투입했지만 결국에는 버블 붕괴를 막지는 못했다.
 

   
  ▲ <도표1> 90년대 버블 붕괴 시기의 일본의 경기부양 대책. 일본 내각부 자료로부터 KSERI작성.  

 

이처럼 경기부양 효과가 없었던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그 중에 하나로 당시 일본 집권당인 자민당의 건설족(토건족) 의원들의 요구에 의해 불요불급한 각종 건설토건 사업들로 경기부양책이 채워졌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말하자면 부동산 버블 붕괴를 막는다는 명목으로 또 다른 버블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뚜렷한 계획도 없이 육지와 무인도를 연결하는 대교, 아무런 목적도 없이 산을 마구 훼손해 건설했으나 산토끼와 노루만 다니는 도로, 조그만 시골길과 연결되는 거대한 고가도로들이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지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처럼 버블 붕괴를 또 다른 버블을 만들어 막으려는 퍼주기식 경기부양대책에도 불구하고 결국 버블붕괴를 막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부동산 버블 붕괴가 시작되던 상황에서 일본 정부의 과도한 건설경기 부양책으로 사실상 시장에서 퇴출돼야 할 부실 건설업체들의 상당수가 연명했다. 그 결과 버블 붕괴 초기의 줄도산에도 불구하고, 90년대 중반까지 일본의 건설업체 수는 오히려 늘어났다. 일본의 경제전문가인 사이토 세이치로에 따르면 건설 토목산업 종사자 수는 91년 604만 명에서 96년에는 676만 명으로 오히려 72만 명이 늘어났다. 반면 이 기간에 제조업 종사자 수는 1,563만 명에서 1,450만 명으로 113만 명이나 줄어들었다. 또한 같은 기간의 건설 토목관련 업체 수를 보면 60.2만 개에서 64.7만 개로 약 4.5만 개나 늘어났다. 또 일본전문가인 알렉스 커(Alex Kerr)의 저서 『치명적인 일본(Dogs and Demons)』(홍익출판사 2001년간)에 따르면 1994년 일본의 콘크리트 제조량은 모두 9,160만 톤으로 7,790만 톤인 미국보다 더 많았다. 국토의 단위 면적당 일본이 미국에 비해 약 30배나 많은 콘크리트를 사용한 것이었다.

부동산 거품이 일면 당연히 건설 붐도 일고,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 건설 경기도 죽기 마련이다. 부동산 거품 붕괴기에는 그만큼 건설시장의 파이가 줄기 때문에 부동산 붐 때 생겨났던 건설업체 수가 감소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오히려 일본의 건설업체 수는 정부의 막대한 경기부양 공공사업 확대에 힘입어 버블 붕괴기에 더 늘어난 것이다. 실제로 사정을 잘 뜯어보면 정부 예산이라는 호흡기로 연명하는 부실 건설업체들이 대폭 늘어난 것이다. 부실기업들이 인수합병이나 퇴출 등을 통하여 원활히 구조조정이 이뤄졌더라면 살 수 있었던 기업들조차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부실화되었다.

이 때문에 “90년대 일본의 경기부양책은 건설업의 보호와 지원에 도움이 되었을 뿐, 경기의 자율적인 힘을 회복시킨다는 케인스 이론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세이치로씨는 평가했다. 세이치로씨에 따르면, 이 같은 90년대의 대대적 건설경기부양 대책은 일시적인 효과에 그칠 뿐 결과적으로 적자재정 체질화와 국채 잔고 누적을 초래했으며, 진정한 원인치료를 미루게 함으로써 도태돼야 할 기업까지 목숨을 연명해 일본 경제의 증상을 더욱 악화시켰고, 초저금리 정책과 재정지출 확대로 격렬한 통증을 숨긴 결과 일본 경제의 병인(病因)이 모호해져 병의 원인 진단에 오류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건설업계 보호 위주의 건설경기 부양대책으로 건설사의 부실은 수면 아래에서 지속적으로 증가했고, 결국 98년부터 금융권의 부실 증가로 이어져 일본의 장기 침체를 가져오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일본 정부는 96년 일본의 실질 GDP성장률이 3.5%로 올라서자 지나친 건설경기 부양으로 천문학적으로 늘어난 국가채무 부담 때문에 위의 <도표1>에서 보는 것처럼 96~97년에는 대규모 경기부양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 그러자 97년부터 건설업체와 금융기관이 줄도산 하는 등 버블 붕괴 후 2차 위기를 맞게 됐다. 부동산 거품에 이어 막대한 ‘재정적자 거품’ 아래 부실을 숨기고 있던 건설업계와 금융기관들이 정부 재정지원이라는 호흡기가 끊어지자 곧바로 다시 중태에 빠져든 것이다. 아래의 <도표2>를 보면 부동산 버블 붕괴에 따라 부실해진 건설업 등의 구조조정 지연으로 90년대 후반에 도산기업 수와 도산기업의 부채 총액이 급증하고 있다. 또한 건설업의 도산 급증으로 실직, 감봉, 장기휴가 등 근로자 피해도 급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일본의 업종별 기업도산에 따른 근로자 피해 추이. TSR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90년대 부동산 버블 붕괴를 막기 위해 일본 정부는 공공 건설사업 경기부양책뿐만 아니라 금리인하와 주가부양대책도 함께 동원했다. 일본 대장성은 우정연금과 국민연금 등을 통해 92년 하반기에만 약 2.82조 엔을 주식시장에 투입해 주가를 떠받쳤다. 이들 공적 연금은 95년까지 주가가 떨어질 때마다 주식시장에서 순매수자로 주가부양에 나섰다. 연기금의 효과적 운용을 위해 ‘투자자’로서 참여한 것이 아니라 주가 부양을 위한 의무적 매수자로서 주식시장에 참여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국제금융계에서는 일본의 이 같은 주가부양 대책을 두고 당시 유엔 평화유지군의 머릿글자인 PKO(Peace-Keeping Operation)에 빗대 PKO(Price-Keeping Operation)라고 조롱하는 말까지 나오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정부를 주식시장의 건전한 투자환경 조성자로 보는 다른 선진국들과 달리 특정 목표주가를 정하고 정부가 투자를 결정하는 일본 정부를 조롱하는 표현이었다.

또 일본 대장성은 일본은행에 수시로 압력을 가해 90년 8월까지 6%였던 기준금리를 91년 4.5%로 떨어뜨린 데 이어 94년까지 1.75%수준까지 낮췄다. 하지만 이 같은 기준금리 인하에 가장 먼저 반응해야 할 건설 및 부동산업계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은행들은 이미 부동산 및 건설업계의 대규모 부실채권을 잔뜩 떠안고 있는 상태에다 신용경색까지 겹쳐 추가 대출을 할 여력도 없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미 부동산시장의 투자자들 모두가 부동산 버블이 붕괴되고 있다는 사실을 점점 뚜렷하게 인식하게 됐기 때문에 일본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한다고 해서 부동산 수요가 다시 늘어나거나 부동산가격이 다시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드물었다.
 
이상으로부터 90년대 부동산 버블 붕괴 시기에 일본 정부는 공공건설사업을 중심으로 한 막대한 건설경기부양책(재정정책)과 금리인하(통화정책), 주가부양책(공적 연금 동원) 등을 총동원했으나 결과적으로 버블 붕괴를 막지 못했다. 오히려 이후 과감한 구조조정 후 효과적으로 쓰일 수 있는 재정 및 통화정책 수단들을 일찌감치 소진해 버렸다고 할 수 있다. 그나마 위안이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90년대 일본은 엔고가 급속히 진행돼 일반 가계의 대외 구매력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지금의 한국 정부는 수출대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원/달러 환율을 높게 유지해 서민들의 물가 부담을 키우면서도 90년대 일본 정부가 하던 정책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우선, 재정확대를 통한 건설경기 부양책 남발에 대해 생각해보자. 2006년 20조원 수준이던 공공건설사업 발주액이 2009년에는 51조원으로 올라갔다. 또한 4대강 사업 등 막대한 토건사업 및 부동산 부양책을 위해 발행한 국공채 발행물량이 현 정부 들어서만 200조원 가량 늘어났다. 연금을 동원한 주식매입은행채, 카드채, 회사채 등 매입 등 마구잡이 정책을 남발하는 양상도 마찬가지다.

또한 일본의 금리 변동 과정과 버블 붕괴에 대해서도 조선일보의 주장은왜곡에 가깝다. 물론 금리 인상 조치가 크게 부풀어오른 부동산 거품을 꺼트리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래 <도표3>에서 보는 것처럼 이미 일본 도쿄의 부동산 가격은 1988년에 정점을 찍고 상승세를 마감하고 있었다. 도쿄의 부동산 폭등세가 마무리된 이후 다른 대도시와 지방 등으로 부동산 폭등세가 확산되고 있었을 뿐이다. 이미 2006년 말 정점을 찍었던 서울 강남 등 수도권 주요도시의 폭등세가 일단락되자 이후 서울 강북과 인천, 경기도 주변부 등 변두리 지역으로 상승세가 확산돼 2008년 중반 정점을 기록했던 것과 비슷한 양상이다.
 

   
  ▲ 도표 3. 일본의 부동산 가격 추이. 각종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즉, 이미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 조치 이전에 버블 붕괴의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 조치는 현 시점에서 보면 과도한 조치였다고 판단할 지 모르나 당시로서는 너무 뒤늦게까지 급격히 부풀어오른 부동산 거품을 잡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받아들여졌다. 금리 인상 조치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상승세가 계속 확산되자 당황한 통화당국이 금리 인상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금리가 2.5%에서 6%까지 상승했던 것이다. 지나고 보니 기준금리 인상폭이 단기간에 과도했던 것처럼 보이지만, 당시 일본 부동산 버블의 심각성을 감안하면 과연 그렇게만 볼 수 있을까. 만약 그렇게라도 다소 급하게 기준금리를 인상하지 않고 부동산 폭등세를 계속 방치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일본의 부동산 버블 규모는 더욱 커졌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부동산 거품 붕괴의 충격은 더 커졌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부동산 버블이 붕괴하기 시작한 이후 금리 대응을 비교해보면 오히려 국내의 부동산 부양 기조는 일본보다 훨씬 더 강하다. 앞서 본 대로 일본은행이 부동산 버블의 정점이던 90년 6%이던 금리를 94년 1.75%로 내리는데 약 4년 가까이 걸렸다. 반면 한국의 경우에는 2008년 8월 5.25%이던 기준금리를 단 몇 개월 만에 2.0%까지 내렸고, 그 같은 사상 최저금리를 16개월 동안 유지했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한국은행을 압박해 부동산 부양에 올인한 결과였다.

부동산 버블이 본격적으로 붕괴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이처럼 단기간에 기준금리를 인하한 것은 일본과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과격한 조치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가 부동산 폭락을 방치하고 있고, 버블을 터뜨리기 위해 조급한 조치라도 취하고 있다는 말인가. 완전히 상황을 정반대로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딴나라에라도 살고 있는 것인가.

조선일보가 정말 일본식 주택시장 장기침체를 걱정한다면 걱정할 정책 대응은 다른 곳에 있다. 현 정부는 무리한 건설 부양책으로 인한 재정 소진과 부실 구조조정의 지연 때문에 일본 주택시장이 장기침체로 치달았던 궤적을 답습하고 있다. 바로 조선일보 등 기득권 언론들이 요구한 방식의 부동산 부양책들 때문에 말이다.

   
  ▲ 도표 4. 건설업체 현황. 대한건설협회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도표4>에서 볼 수 있듯이 건설업계의 대표적인 이익단체인 대한건설협회의 통계에 따르면,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4270개이던 종합건설업체 수는 2001년 이후 1만3000개 수준으로 세 배 이상 늘어난 상태를 현재까지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또 1998년 522개 업체가 부도났고, 2000년대 부동산 호황기에도 매년 150개 전후가 부도로 쓰러졌다. 그런데 주택시장이 침체하고 외환위기 이후 사상 최대의 경제위기를 맞은 지난해에 부도업체 수는 87개에 불과했다. 이들 건설업체들의 평균수주액도 부동산 호황기였던 2003년 78.8억원이었으나 주택시장 침체가 본격화된 2008년과 지난해에는 정부의 대대적인 토건 부양책 등으로 95.4억원, 96.4억원으로 늘어났다. 부실 구조조정 지연으로 물밑에서 좀비기업들이 늘어나 부실 채권을 양산했던 일본의 90년대와 비슷한 양상이다.

이처럼 주택시장의 버블 붕괴와 장기침체 과정, 그리고 그를 둘러싼 한일 양국의 정책대응 및 기득권 세력의 대응 양상이 너무나 비슷하다. 오히려 부동산 기득권 세력들이 ‘일본식 장기 침체는 안 된다’면서 주택시장을 장기 침체로 몰고 가고 있는 세력들이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는 지금까지 대대적인 건설 및 부동산 부양책과 투기조장책으로 시장수급에 의한 자연스러운 가격하락 조정을 가로막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잘못된 투기조장책들은 결과적으로 주택시장의 자생적 복원력을 죽여 중장기적으로 주택시장의 장기침체를 초래할 뿐이다. 용수철도 수축돼야 다시 튀어 오를 수 있는 법인데, 현 정부는 이미 한껏 늘어난 용수철이 되돌아가는 것을 억지로 가로막고 있다. 이미 한껏 늘어난 용수철을 억지로 잡아당기면 용수철은 끊어져 복원력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를 현실에 대입해보자. 건설업계를 제때 구조조정하지 않으니 살아남은 건설업체들이 이미 고갈된 수요 이상의 공급물량을 쏟아내게 된다. 이미 공급 과잉인 상태에서도 수급 조정이 지연되는 것이다. 또한 좀비처럼 살아남은 건설업체들이 지속적으로 사업을 벌이는 과정에서 부실 채권이 계속 늘어나게 된다. 또한 주택 가격이 바닥을 친 뒤 마중물로 쓰일 수 있는 잠재 수요자들을 계속 무리하게 빚을 내 사게 함으로써 결국 주택시장 회복을 주도할 미래 수요를 고갈시키게 된다. 미래의 수요를 현재의 부동산 거품을 떠받치기 위해 당겨써버림으로써 부동산 거품 붕괴의 에너지를 키우는 반면 주택시장 회복을 지연시키게 되는 것이다. 또한 주택시장의 자연스러운 가격하락 조정을 가로막는 바람에 오히려 부동산 거래가 단절되고 침체가 심화되고 있다. 그로 인해 부동산중개업인테리어, 이삿짐서비스 등 부동산과 연관된 생산서비스 경제영역마저 더욱 위축되고 있다. 바로 이 모든 것들이 현재 건설업계 및 부동산업계 및 이들의 대변지격인 기득권 언론들이 주문한 결과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또한 정확히 1990년대 일본이 걸어갔던 전철이기도 하다.

이처럼 정부가 개입해 부동산 시장을 교란하고 구조조정과 부실 정리를 지연시킨 탓에 일본의 주택시장이 자연스러운 복원력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부동산 버블 붕괴의 충격이 컸지만, 초기에 각종 토건부양책으로 재정을 탕진하고, 살아남은 건설업체들이 수요 대비 과도한 주택 공급을 지속해 부동산 시장이 복원력을 잃어버린 가운데 주택수요 연령대 인구가 급감하고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돼 잃어버린 10년을 넘어 20년까지 치닫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정황들이 2010년대 한국에서 거의 비슷하게 진행되고 있다. 일본의 전철을 피해가자고 하면서 여러 면에서 일본의 전철을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미 부동산 거품이 한껏 부풀어오른 상황에서도 ‘연착륙’운운하며 추가 부양책을 주문하는 세력들이야말로 부동산 거품을 키워 한국경제를 위기로 몰아가고, 경착륙을 넘어 한국경제의 불시착을 유도하는 위험한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부동산 거품에 취해 희희낙락했던 건설업계와 금융업계, 그리고 아파트 분양 광고에 목을 맨 언론들의 단기적 충격을 줄이기 위해 중장기적으로 한국 경제 전반에 돌아올 충격을 키우는 우를 범할 수는 없다. 국민들은 국민경제를 볼모로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려는 이들 부동산 기득권 세력들을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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